빅테크의 헬스케어 경쟁이 병원 데이터와 클라우드 인프라를 넘어 제약 연구개발(R&D) 공정으로 번지고 있다.
후보물질을 찾고 실험 대상을 좁히는 초기 연구 단계에 인공지능(AI)이 들어오면서, 제약사 연구개발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플랫폼 싸움으로 옮겨가는 흐름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14일(현지시간) 신약 후보물질 설계와 평가를 지원하는 인공지능 도구 ‘아마존 바이오 디스커버리(Amazon Bio Discovery)’를 내놨다.
연구자는 별도 코딩 없이 40개 이상 생물학 인공지능 모델을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을 만들고 평가할 수 있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모델 선택과 변수 설정, 결과 해석을 돕는다.
AWS가 겨냥한 지점은 후보물질 탐색과 실험실 검증 사이의 병목이다.
연구자가 추린 후보물질은 연계된 실험 파트너로 보내 합성·검사를 거칠 수 있고, 실험 결과는 다시 시스템에 반영된다. 계산으로 후보를 만들고 실험으로 걸러낸 뒤, 그 결과를 다시 설계에 넣는 순환 구조를 클라우드 위에 얹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제약사의 연구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연구 목표를 기계학습 절차로 옮길 계산생물학 인력이 부족한 점이 병목으로 꼽혀 왔다. AWS는 이 과정을 자동화 도구와 인공지능 에이전트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AWS는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와의 협업에서 여러 모델을 활용해 약 30만개의 항체 후보를 생성한 뒤 10만개를 실험 대상으로 좁혔다. 실험은 트위스트 바이오사이언스가 맡았다. AWS는 수개월 걸릴 수 있는 작업을 수주 단위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초기 이용자에는 바이엘, 브로드연구소, 보이저 테라퓨틱스가 포함됐다. AWS는 세계 상위 20개 제약사 가운데 19곳이 이미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기존 클라우드 고객 기반을 신약개발 AI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있는 셈이다.
아마존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노보노디스크는 같은 날 오픈AI와 전략적 협력을 맺고 신약 발굴부터 제조, 공급망, 상업 운영까지 인공지능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연구개발과 제조, 영업 부문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하고 2026년 말까지 전사 통합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사들이 인공지능을 보는 시각도 넓어지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뿐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 시험기관 선정, 규제 문서 작성처럼 시간이 많이 드는 업무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인공지능이 아직 대형 신약 후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는 단계까지 검증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아마존의 행보는 제약 R&D가 빅테크의 새 격전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WS는 보스턴컨설팅그룹, 머크와 함께 임상시험 기관 선정 과정을 개선하는 인공지능 플랫폼도 공개할 예정이다. 후보물질 발굴에서 임상 운영까지 연구 공정 전반을 클라우드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연구 속도를 높일 선택지가 늘지만, 의존도 문제도 남는다. 연구 데이터와 모델, 실험 결과가 특정 플랫폼 안에서 순환할수록 데이터 보안과 소유권, 모델 검증 책임을 둘러싼 논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증권가 관계자는 "신약개발 AI 경쟁은 기술 성능을 넘어 누가 연구 공정의 표준 플랫폼을 쥐느냐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