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초대형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 '테라팹(Terafab)'이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납품 타진에 돌입했다.
테슬라(Tesla)와 스페이스X(SpaceX)의 막대한 AI 연산 수요를 자체 충당하기 위해 2029년 양산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반도체 제조의 천문학적 진입장벽을 간과한 무모한 도전'이라는 회의론과 '기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를 압박하기 위한 고도의 지렛대(Leverage) 전략'이라는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업계에 따르면, 테라팹 프로젝트 실무진은 최근 몇 주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도쿄일렉트론(Tokyo Electron), 램리서치(Lam Research) 등 글로벌 장비 3사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접촉했다.
실무진은 포토마스크, 기판, 식각기, 증착기 등 반도체 제조 전반에 걸친 핵심 장비의 가격과 납기일을 긴급 요청했다. 텍사스 오스틴의 테슬라 캠퍼스 내에 지어질 테라팹을 2029년까지 가동하기 위해, 머스크의 지시대로 '빛의 속도(light speed)'로 공급망 구축에 나선 것이다.
업계가 테라팹의 성공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첫 번째 이유는 '돈'이다. 최첨단 반도체 파운드리를 하나 구축하는 데는 통상 100억~200억 달러(약 13조~27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자본이 소요된다.
현재 테슬라의 잉여현금흐름이나 스페이스X의 투자금만으로 이 거대한 비용을 온전히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테라팹 법인을 분리해 외부 펀딩을 대규모로 유치하거나, 미국 정부의 칩스법(CHIPS Act) 보조금을 지렛대 삼아 자본을 조달하는 우회 전략이 필수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빅테크들의 '엔비디아 독립 러시'라는 메가 트렌드 속에서 머스크의 노선은 유독 튀고 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Sam Altman)이 중동의 오일머니를 끌어모아 TSMC, 삼성전자 등 기존 파운드리 강자들과 'AI 칩 연합군'을 구축하려는 반면, 머스크는 설계부터 생산(Fab)까지 모든 것을 테슬라 울타리 안에서 해결하려는 극단적인 '수직계열화(Vertical Integration)'를 고집하고 있다.
외부 의존도를 0%로 만들겠다는 머스크 특유의 '독불장군'식 경영 철학이 반도체 생태계에서도 통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이번 프로젝트에 얽힌 삼성전자와 인텔의 진짜 역할에도 이목이 쏠린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파운드리 경쟁자로서 접촉한 것이 아니라, 테라팹이 생산할 AI 칩에 필수적으로 탑재될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핵심 공급처로서 협상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난주 테라팹 합류를 선언한 인텔 역시 단순 제조를 넘어 자사의 강점인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 역량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신생 팹인 테라팹이 칩의 미세화 수율을 단기간에 잡기 어려운 만큼, 인텔의 2.5D/3D 패키징 기술을 빌려 여러 칩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성능을 끌어올릴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9년 양산이라는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테라팹이 당장 2나노·3나노 급의 최첨단 미세공정에 도전할지, 자율주행과 우주항공에 적합한 레거시(성숙) 공정에 집중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신생 업체가 불과 5년 만에 TSMC 수준의 최첨단 양산 수율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테라팹이 갖는 파괴력은 막강하다. 테라팹이 TSMC나 삼성전자의 첨단 공정을 완벽히 대체하지 못하더라도,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자체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늉만으로도 기존 칩 공급사들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와 TSMC가 쥐고 있는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테라팹은 테슬라가 안정적인 칩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 단가를 낮추기 위해 꺼내 든 가장 강력한 '협상용 지렛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