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세계 최초 인공지능(AI) 포괄적 규제인 'AI법'을 완화하려는 시도가 회원국 간 이견으로 1차 불발되며 글로벌 AI 규제 지형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아시아의 AI 속도전에 위기감을 느낀 EU가 규제 단순화를 추진했으나, 규제 중복 면제 범위와 거대 기술 기업(빅테크) 혜택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EU 회원국과 유럽의회는 28일(현지시간) AI 규제 완화를 포함한 '디지털 옴니버스(Digital Omnibus)' 패키지를 두고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벌였으나 최종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2024년 8월 발효된 AI법은 생체 인식, 의료, 법 집행 등 고위험 영역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족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등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역내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유럽집행위원회는 기업의 규제 부담을 덜고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AI법을 비롯해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데이터법 등을 통폐합 및 단순화하는 디지털 옴니버스 입법을 추진해 왔다.
이번 협상이 결렬된 핵심 원인은 기존 부문별 규제와 새로운 AI 규제 간의 '이중 규제' 쟁점이다. 일부 회원국과 의원들은 제품 안전 규제 등 이미 특정 산업군에 적용되는 안전망이 존재할 경우 AI법의 엄격한 요건을 면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산업계가 중복되는 규제로 인해 감당해야 할 막대한 준수 비용과 행정력을 우려한 조치지만, 이를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AI 규제의 방향성이 표류하면서 시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엄격한 AI법 원안에 맞춰 기술을 개발해 온 선도 기업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킴 판 스파렌타크 유럽의회 의원은 성명을 통해 "안전을 중시하며 규제를 성실히 준비한 유럽 기업들은 규제 혼돈에 직면한 반면, 빅테크는 아마도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을 것"이라며 규제 완화 지연이 역내 기술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합의 불발에 따라 다음 협상은 5월 중순 재개될 예정이다. 하지만 디지털 옴니버스 수정안이 빅테크의 로비에 굴복한 결과라는 프라이버시 활동가 및 시민권 단체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AI 규제의 '표준'을 자처했던 EU가 혁신 육성과 안전 보장 사이에서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유럽 시장 진출을 노리는 전 세계 AI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불확실성 역시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