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대형 은행의 인공지능(AI) 도입 실험에 '선별적 차단'이라는 새로운 기조가 등장했다. 골드만삭스가 사내망에서 다른 AI 모델은 유지한 채 앤스로픽의 접속만을 콕 집어 제한하면서, 금융권의 까다로운 AI 공급망 관리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사내 AI 플랫폼을 통해 제공하던 앤스로픽의 AI 챗봇 '클로드(Claude)'에 대한 홍콩 주재 직원들의 접속을 전면 차단했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른바 '핀셋 차단'이다. 구글의 제미나이와 오픈AI의 챗GPT는 홍콩 사내 플랫폼에서 계속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앤스로픽과 직접 협의를 거친 뒤, 자사 API 지원 국가에 홍콩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약관을 가장 엄격하게 해석해 선제적 접속 차단에 나섰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앤스로픽의 최신 AI 모델인 '미토스(Mythos)'가 은행 시스템에 미칠 잠재적 위험성을 짚으며 전방위적인 리스크 점검을 지시한 것도 통제 수위를 높이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시장은 골드만삭스의 급격한 태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불과 지난 2월 마르코 아르젠티 골드만삭스 최고정보책임자(CIO)는 앤스로픽과 긴밀히 협력해 은행 업무를 자동화할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라고 공식화한 바 있다.
핵심 파트너로 내세웠던 벤더를 사내 주요 거점에서 단숨에 배제한 것은 단순히 약관 문제를 넘어 금융 데이터 보호와 사내 보안망 안정성 확보에 있어 예기치 못한 허들이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금융사의 자체적인 컴플라이언스 강화 이면에는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거시적 장벽이 존재한다.
홍콩은 그간 중국 본토의 규제를 피하면서도 미국 빅테크의 AI 모델이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오는 5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자국 AI 기술의 중화권 유출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거점인 홍콩 지사를 운영해야 하는 골드만삭스로서는 데이터 보안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가장 보수적인 잣대로 벤더들을 솎아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게 시장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